부산 과학고 박영수군
중1때 ‘수준 안맞아’ 영재학교로… 꿈은 물리학자
고교논문이 대학원 수준 “세계와 겨루고 싶어요”
[조선일보 안석배 기자]
1990년 6월 7일 출생. 11세2개월 스웨덴 뢰다배리 초등학교 졸업, 12세8개월 서울 경희중 졸업, 14세10개월 미 MIT ‘합격’…. 국내 첫 영재학교인 ‘부산과학고’ 3학년 박영수군이 주인공이다. 초등학교를 5년 반, 중학교를 1년에 마치고, 고교도 2년 반 만에 마치니 친구들이 중 3일 때 대학에 합격한 셈이다. MIT는 물론 칼텍(캘리포니아공대)·코넬대·시카고대·UC 버클리 등 미 명문대의 입학허가도 받았다. 2003년 ‘부산과학고’ 개교 때 최연소(13세)로 입학했던 그는 7월에 조기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른다.
아버지(한국외대 박노호 교수)가 스웨덴 유학 중 태어나 세 살 때 귀국한 박군은 어려서부터 수학·과학·언어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다.
“네 살 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0 밑의 숫자는 어떻게 되냐’고 묻더군요. 수리개념이 남다르다고 생각했죠.”(박군 어머니) 서울 봉화초등학교 1학년 때는 홍수·가뭄 대책에 관한 신문기사를 펴놓고 연구할 정도로 남달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청주교대 영재센터에서 중·고교 과학을 접했다. ‘뉴튼의 법칙’ ‘쿨롱의 법칙’을 배웠을 때 ‘재미있고 신기했다’고 그는 말했다.
언어영역도 남달랐다. 부모와 함께 스웨덴에서 1년을 지낸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해 두세 달 만에 치른 영어시험에서 이 학교 개교 이래 최고성적을 받았다. 박군은 “과학·수학보다 언어에 더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스웨덴에서 1년간 영어의 감을 잡은 것 같다”고 했다. 박군의 SAT(미국대학입학고사) 성적은 SATⅠ1560점(1600점 만점), SATⅡ(물리·수학·작문) 800점 만점. 6개월 독학해 받은 점수다. 올 초 러플린 KAIST총장의 ‘부산과학고’ 특강을 완벽히 통역해냈다.
중1 때 고비가 있었다. 수학·과학·영어 수업이 자신의 수준과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 “하루는 집에 와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더군요. 새 방법을 찾고 싶다고….”(박군 어머니)
그해 겨울 부산에 ‘영재학교’가 개교하면서 박군은 입학허가를 받았다.
“영재학교 수업은 따분할 틈이 없었어요. 열심히 이해하고, 문제 풀고….” 부산과학고는 대학처럼 학생 스스로 커리큘럼을 작성해 수업을 듣는다. 박군은 1학년 때 고교과정, 2~3학년 때는 대학수준의 수학·과학을 배웠다.
그의 꿈은 물리학자. “과학을 통해 우리나라와 인류를 위해 기여해 보고 싶다.”는 게 그의 포부다. 고교에서 매년 1편씩 제출하는 논문도 ‘물리학’ 분야다. 1학년 때는 ‘레이저 위상차를 이용한 양자 암호학에 관한 연구’, 2학년 때는 ‘비선형 광합결정을 이용한 OPO제작 및 특성분석’. 이를 지도한 KAIST 교수는 “대학원 수준의 논문”이라고 평했다. 2003년 한국청소년물리탐구토론대회 2위, 2004년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한 호주 브리스본 국제 청소년물리탐구토론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호주 국제대회는 박군이 유학을 결심한 동기가 됐다.
“제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나가보니 뛰어난 친구들이 많더군요. 한번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학교 성적은 최상위급. 대부분 A학점이고, 20%는 A+(상위 10% 이내)다. 작년엔 ‘삼성 이건희 국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대학 4년간 연 5만달러씩 장학금도 받게 된다.
15세 박군에게, 공부는 쉽고 즐겁게만 보였다. 과연 그럴까?
“모든 과정이 그런 것은 아니죠. 무림의 고수들이 내공수련할 때, 고생을 거쳐 어떤 경지에 오르고 또 다른 경지를 향하면서 행복해 하잖아요. 공부도 그런 것 같아요.” 하루 잠자는 시간은 5~6시간. 그에게서 한국 과학의 희망을 본다.
하버드대 응용공학부 함돈희 교수는 이제 겨우 31살이다. 한국의 또래들이 박사학위를 마쳤을 나이이지만, 그는 세계 최고 대학의 교수가 된 지 3년이나 됐다. 2002년 28살의 젊은 나이로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 이전까지 한국인으로서는 화학과 박홍근 교수가 32살에 하버드에 입성했던 기록을 함교수가 몇년 당겨놓은 셈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과학이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함교수 스스로도 “학과 공부나 시험에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1992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후 96년 졸업할 때의 학점이 4.22. 한 과목만 빼고 모두 만점(A+)을 받아 자연대 수석졸업의 영광을 안았다.
유학 준비도 순조로웠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며 유학공부를 병행,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대학원에 진학했다. 박사과정 중에는 미국 IBM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했다. 박사논문 주제는 ‘통합통신시스템의 잡음 프로세스’로 초고속회로에 대한 것이다.
이 논문은 캘리포니아공대 전자공학분야의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됐으며 학교 전체에서는 2등을 차지했다.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 졸업 때 최우수논문을 받은 것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이다. 이러한 이력 때문인지 그는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도 거치지 않고 졸업과 거의 동시에 하버드대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하버드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아는 교수도 없었는데, 5명의 후보자 중에 내가 뽑혔다”며 “연구분야가 학교에서 원하는 바와 잘 맞았고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함교수의 연구 분야는 휴대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레이더 등에 들어가는 초고속회로이다. 작은 용량에 많은 기능을 부여하려면 초고속회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느냐가 연구의 핵심이다. 그가 만드는 회로는 100기가바이트(GB)로 1초에 1백억번 정도 진동하는 아주 빠른 회로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의 회로가 1초에 1억~2억번 정도 진동한다고 하니 50~100배쯤은 빠른 것이다. 회로를 최적화하기 위해 잡음 제거는 필수적이다. 그는 “정상파의 모양을 바꿈으로써 잡음을 줄이고, ‘솔리톤’이라는 특수한 파동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교수는 요즘 바이오 공학쪽으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 발표한 논문은 ‘집적회로(IC)와 미세유체를 접목한 마이크로시스템’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이다. 물(유체)이 지나다닐 수 있는 아주 작은 통로를 만들고 여기에 집적회로를 붙여 전자기파들이 세포를 움직이게 하는 개념이다. 그는 “지금은 2차원에서 이 회로를 구현 중이지만 앞으로 3차원으로 확장하면 인공 피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인들의 활동 범위도 넓어지고 우수한 대학의 교수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70~80년대 미국에 유학와서 열심히 연구했던 선배들의 노력이 쌓여 한국의 수준이 한단계 높아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공계 기피론’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현상을 이해하면서도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그는 “분명히 과학에 재능있는 학생들이 있을 텐데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물론 자신도 한때 방황의 시절이 있었다. 처음 유학을 갔을 때 물리학이, 나아가서 과학이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의문을 가졌다. 한때 학업을 접고 MBA, 로스쿨 등에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결국 보다 진취적인 학문인 공학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는 후배들에게 “20대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제 30대를 설계하는 시점에 와 있다.
“아직은 초보 교수라 거창한 연구 청사진을 내놓기는 부담스럽습니다. 다만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소박하지만, 힘있는 그의 마지막 전언이다.
〈케임브리지(메사추세츠주)|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